
목표를 이루고 나서 오히려 공허해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몇 년을 쉬지 않고 달려가 원하던 성과를 손에 쥐었을 때, 막상 오래 느끼지 못했던 것이 만족감이었습니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읽으면서 그 감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선 황제가 죽음을 앞두고 쓴 이 회고록은, 결국 인간이 무엇을 남기며 사는 존재인지를 정면으로 묻고 있었습니다.
권력의 정점에서 느끼는 고독
하드리아누스는 로마 제국을 통치한 황제로서, 원로원(Senatus)과의 관계를 조율하고 속주(Province) 행정을 직접 순시하며 제국 전체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인물입니다. 여기서 속주란 로마 본토 외 지역으로 황제의 직접 통치 아래 놓인 식민 행정 단위를 의미합니다. 그는 판테온 재건과 하드리아누스 성벽 축조로 대표되는 막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 엄청난 권력을 가진 인물이 가장 자주 묘사되는 감정이 다름 아닌 고독이라는 점입니다. 수천만 명 위에 서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도 자신의 내면을 완전히 털어놓을 수 없는 상태.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권력이 곧 자유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목표로 삼았던 일을 이루었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축하와 부러움을 보냈지만, 정작 저는 그 자리가 생각보다 훨씬 고요하고 공허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책임이 커질수록 홀로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늘어나고, 그 무게는 아무도 대신 져주지 않았습니다. 하드리아누스가 보여주는 지도자의 고독은 단순한 감상이 아닙니다. 로마 황제의 통치 방식을 연구한 역사학 분야에서도, 권력 집중이 오히려 개인의 정서적 고립을 심화시킨다는 점은 꾸준히 논의되어 왔습니다(출처: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 작품은 그 논의를 문학적으로 가장 섬세하게 풀어낸 텍스트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황제라는 권력 구조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소외되는지를 이 소설처럼 내면에서부터 그려낸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그 점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역사 소설이라기보다 철학적 자서전에 가깝습니다.
사랑과 상실이 권력보다 오래 남는 이유
하드리아누스와 안티노우스의 관계는 이 작품의 감정적 핵심입니다. 안티노우스는 황제의 총애를 받던 청년으로, 나일강에서 익사한 뒤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신격화(Apotheosis)되었습니다. 신격화란 죽은 자를 신의 반열에 올리는 로마의 의례적 행위를 뜻하는데, 황제들조차 사후에 원로원의 결정을 거쳐 신으로 추대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드리아누스는 살아 있는 동안 안티노우스를 직접 신격화했습니다. 이는 정치적 제스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상실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한 인간적인 몸부림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어느 시점에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람과 다시 이야기를 나눴을 때, 제가 기억하는 삶의 장면들이 전부 성과나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했던 순간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분명히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목표들이었는데, 기억 속에서 그것들은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하드리아누스에게도 그랬을 것입니다. 속주를 누비며 쌓아 올린 제국의 질서보다, 안티노우스와 함께했던 시간이 죽음을 앞둔 그에게 훨씬 더 크게 떠올랐을 것입니다. 사랑은 그에게 삶의 가장 뜨거운 부분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상실 역시 어떤 정치적 실패보다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이 인간의 감정에 대해 깊이 공감된다는 의견이 많은 반면, 지나치게 이상화된 내면 묘사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그 지점에서 약간의 거리를 느끼긴 했습니다. 황제라는 위치가 실제로 가져온 폭력성과 권력의 현실적인 면이 상대적으로 절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소설의 한계라기보다는, 의도된 초점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드리아누스가 보여주는 사랑과 상실의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랑은 황제의 권력으로도 통제되거나 대체되지 않는다
- 상실 이후 남는 공허함은 명예나 업적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관계이며, 그 감정의 흔적이 삶의 기억을 구성한다
죽음 앞에서 삶을 다시 읽는 방식
작품 후반부에서 하드리아누스는 자신의 죽음을 인지한 상태에서 전 생애를 되돌아봅니다. 이 과정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문학적 구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메멘토 모리란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함으로써 삶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는 고대부터 내려온 철학적 태도입니다. 이 작품은 그 태도를 황제 한 인물의 내면 독백을 통해 2000년의 시간을 넘어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그가 죽음 앞에서 정리하려는 것은 치적(治績)이나 전쟁의 승패가 아닙니다.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충분했는지, 자신이 원했던 삶에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에는 절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았는데,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질문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 철학에서도 유사한 논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실존주의란 인간이 먼저 존재하고, 그 이후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사상적 입장으로,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 오히려 삶을 더 선명하게 살게 한다는 하이데거적 관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문학이 이 사상을 어떻게 구현하는지에 대해서는 국내외 다양한 학술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출처: 교보문고 스콜라 학술논문). 결국 하드리아누스가 마지막에 남기는 질문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가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황제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한 번쯤 멈춰 세우는 힘이 있습니다.《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쉬운 책이 아닙니다. 하지만 읽고 나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이 책을 고민하고 계신 분이라면, 빠르게 읽으려 하지 말고 황제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그 속도 안에서 의외로 자신의 이야기가 보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