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나답게 사는 것"이 자유로운 선택을 의미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헨리크 입센의 『페르 귄트』를 읽고 나서, 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일 수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이 작품은 허풍과 모험으로 가득한 한 남자의 일생을 그리지만, 실상은 끊임없이 도망치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인간의 초상입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경험을 쌓고 자유롭게 선택하는 삶이 자아를 완성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건 반쪽짜리 진실입니다.
자아의 착각
페르 귄트는 평생 "나는 나답게 살겠다"라고 선언합니다. 트롤의 세계에서 그에게 제안되는 구호는 "너 자신에게 충실하라"입니다. 이 말은 겉으로 보면 자아실현의 선언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욕망을 정당화하는 주문에 가깝습니다. 페르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책임을 회피하며, 매번 다른 얼굴을 씁니다. 제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비슷한 논리를 사용했습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내 본성에 맞게 살아야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했던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중 일부는 도전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한 회피였습니다. 페르처럼 저도 순간의 이익과 두려움에 휘둘렸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내 욕망을 따르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건 자아가 아니라 변명의 도구였습니다. 입센은 페르를 통해 이 허상을 드러냅니다. 정체성은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반복된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이 쌓여야 비로소 단단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합니다.
도피와 자유
페르는 위기마다 떠납니다. 사랑 앞에서도,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실패의 순간에서도 그는 도망칩니다. 세계를 방랑하지만 그 여정은 성장이라기보다 회피의 연속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는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비웃으면서도 어딘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선택지는 많습니다. 직업을 바꾸고,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도시로 이사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겉으로는 자유처럼 보였지만, 동기를 들여다보면 두려움이었습니다. 책임질 준비가 되기 전에 떠났고, 실패를 감당하기 전에 방향을 틀었습니다. 페르는 늘 새로운 기회를 좇지만 자기 내면과는 대면하지 않습니다. 입센은 그 방랑을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페르는 점점 비어갑니다. 경험은 많지만 중심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여행과 새로운 도전이 자아를 풍부하게 만든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마주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이게 제가 이 작품에서 읽은 가장 냉혹한 메시지였습니다.
책임의 깊이
노년에 이른 페르는 '단추 주조공'과 마주합니다. 그는 제대로 된 자아를 만들지 못한 채 녹여져 하나의 재료로 돌아갈 위기에 놓입니다. 이 상징은 강렬합니다. 특별한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진정한 선택도 하지 않은 삶. 큰 죄인이 아니라 끝내 결단하지 못한 인물입니다. 저는 이 설정이 잔인하다고 느꼈습니다. 동시에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극단적 악인이 되지 않아도 무책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인간관계를 정리할 때도 그랬습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깊이 책임지기 전에 거리를 뒀습니다. 그게 자유라고 믿었지만, 실은 도망이었습니다. 작품은 완전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솔베이그의 존재는 조건 없는 기다림과 사랑을 상징하며, 페르가 끝내 도달하지 못한 중심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희망이라기보다 질문으로 봅니다. 인간은 늦게라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대답은 결국 책임의 깊이에 달려 있습니다. 이후로 저는 결정을 줄이더라도 한 선택에 더 오래 머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고 싶다면 먼저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유는 선택의 개수로 측정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자유는 책임의 깊이로 증명됩니다. 『페르 귄트』는 자유를 찬양하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합니다. 당신은 정말 자신으로 살았는가. 많은 경험과 화려한 말이 자아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도망은 쉽고 합리화도 쉽습니다. 어려운 것은 남아서 감당하는 일입니다. 자아는 이동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책임으로 만들어집니다. 입센은 냉정하지만 정확합니다. 인간은 끝까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을 피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녹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