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에서 자기보다 눈에 띄게 빠르게 올라가는 사람을 본 적 있으신지요. 저도 그런 동료를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그냥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습니다. 기 드 모파상의 『벨 아미』는 바로 그 '설명되지 않는 것'을 150여 년 전에 이미 해부해 놓은 소설입니다.
능력보다 먼저 작동하는 것들
저와 함께 일했던 그 동료는 실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실력 이상으로 잘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사람과의 관계를 읽는 능력이었습니다. 상사에게는 적절한 타이밍에 의견을 꺼내고, 갈등이 생길 것 같으면 한 발 먼저 빠져나오고, 정작 중요한 자리에서는 기가 막히게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반면 저는 맡은 일만 잘하면 자연스럽게 평가받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것 같습니다.『벨 아미』의 주인공 조르주 뒤루아가 딱 그런 인물입니다. 가난한 출신에 특출한 재능도 없지만, 상류층 여성들과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구축하며 파리 사회에서 지위를 끌어올립니다. 이걸 단순히 '나쁜 사람의 성공 이야기'로 읽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모파상이 보여주려 한 건 뒤루아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그런 전략이 통하는 사회 구조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사회자본이란 개인이 가진 인간관계 네트워크와 그로부터 얻는 자원을 뜻하는데, 학자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이 체계화한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누구를 알고 있고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적 이동 가능성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입니다. 『벨 아미』는 이 사회자본의 작동 원리를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뒤루아의 성공 방식을 보면 다음과 같은 패턴이 반복됩니다.
- 상류층 인맥에 전략적으로 접근하여 신뢰를 구축
- 여성 관계를 통해 사회적 지위와 정보를 동시에 획득
- 언론이라는 공론장(public sphere)을 자신의 영향력 확장 수단으로 활용
- 결혼을 통한 계급 이동을 최종 수단으로 선택
이 패턴은 19세기 파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경험하면서 느낀 것처럼, 현대 조직 사회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작동합니다.
욕망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벨 아미』가 불편한 이유 중 하나는, 뒤루아를 명확하게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를 둘러싼 인물들, 즉 언론인들, 정치인들, 상류층 여성들 모두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뒤루아만 특별히 파렴치한 게 아니라, 그 사회 전체가 욕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 모파상은 이 욕망을 미화하지도, 과도하게 단죄하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은 자연주의 문학(Naturalism)입니다. 자연주의 문학이란 인간을 환경과 본능의 산물로 바라보며, 도덕적 판단 없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문학적 경향을 말합니다. 에밀 졸라와 함께 모파상이 이 흐름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데, 『벨 아미』는 그 특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욕망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무조건 억제해야 한다"라고 보는 분들도 있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건강하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욕망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느냐입니다. 뒤루아의 문제는 욕망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을 충족하는 과정에서 타인을 수단으로만 대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적 욕구와 인정 욕구는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위계론(Hierarchy of Needs)에서 핵심 단계로 설명됩니다. 욕구 위계론이란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부터 자아실현까지 5단계로 나눈 심리학 이론으로, 사회적 소속과 인정이 그 중간 단계를 차지한다는 내용입니다. 뒤루아의 욕망은 이 이론의 틀에서 보면 매우 전형적인 인간적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뒤루아를 거부감 있게 봤는데, 다 읽고 나서는 묘하게 이해가 됐습니다. 그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전혀 다른 맥락이긴 해도, 제가 직장에서 어느 순간 선택했던 것들과 완전히 무관하지 않았거든요.
성공 이후에 남는 것
뒤루아는 결국 성공합니다. 부와 지위를 얻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오릅니다. 그런데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묘하게 공허합니다. 화려한 결혼식 행렬을 걷는 뒤루아의 내면에서 독자는 따뜻한 충만감을 찾기 어렵습니다. 모파상은 성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성공이 가진 한계를 조용하게 드러냅니다. 이런 서사 구조를 비평 용어로는 아이러니컬 리얼리즘(Ironical Realism)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이러니컬 리얼리즘이란 표면적 성공과 내면적 공허가 동시에 존재하는 방식으로 인간 현실을 그려내는 서술 전략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이겼는데 왜인지 씁쓸한 결말을 통해 독자에게 더 깊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입니다. 저도 그 씁쓸함을 압니다. 한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했을 때, 정작 인정을 받아도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건 내가 원했던 인정이 아니었으니까요. 뒤루아의 공허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벨 아미』를 단순히 '부패한 성공의 이야기'로 읽는 분들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성공의 기준을 누가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읽힙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이 소장한 모파상의 원고 자료를 보면, 그가 이 작품을 쓰면서 당시 언론과 정계의 부패 구조를 직접 취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출처: 프랑스 국립도서관). 즉, 이 소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19세기 파리의 사회적 현실에 기반한 기록이기도 합니다.『벨 아미』가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욕망과 성공에 대한 질문이 시대를 넘어 유효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지금 내가 좇고 있는 성공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를요. 저는 그 질문이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솔직한 답이 나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