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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외면하는 인간의 방식 (병신과 머저리, 전쟁, 인간)

by 토끼러버 2026. 4. 15.

《병신과 머저리》 – 이청준 도서 관련 사진

솔직히 저는 한동안 '괜찮아 보이는 사람'을 진짜 괜찮은 사람으로 믿었습니다. 가까운 지인이 큰 사고를 겪은 뒤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저는 그가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말투와 표정, 사소한 반응에서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고, 그때서야 '침묵이 곧 회복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청준의 소설 《병신과 머저리》는 바로 그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전쟁이 남긴 보이지 않는 상처

전쟁은 끝났는데 왜 그 사람은 여전히 아플까요? 《병신과 머저리》의 주인공 형은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전쟁이 남긴 상처가 현재진행형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전쟁의 물리적 피해가 아닙니다. 전투가 끝난 뒤에도 개인의 내면에서 계속되는 심리적 후유증, 그것이 핵심입니다. 이 지점에서 심리학 용어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PTSD란 극단적인 공포나 충격을 경험한 이후에도 그 기억이 반복적으로 침습하여 일상 기능을 방해하는 정신건강 상태를 말합니다. 단순히 '마음이 약한 것'이 아니라, 뇌의 공포 처리 회로 자체가 변형되는 신경생물학적 반응입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에 따르면 전쟁 참전 군인의 약 11~20%가 PTSD를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이런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도 쉽게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지인의 경우, 저는 그와 수십 번을 만나면서도 그의 경직된 반응이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청준이 소설 속에서 포착한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상처는 크게 소리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그리고 오래 남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 고통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골절은 엑스레이로 확인할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에는 영상 검사가 없습니다. 《병신과 머저리》는 그 점을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는, 그 사람이 얼마나 조용한지로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작품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처를 외면하는 인간, 그리고 공감의 가능성

그렇다면 우리는 왜 타인의 고통 앞에서 그토록 쉽게 눈을 돌릴까요? 《병신과 머저리》에서 '병신'과 '머저리'라는 표현은 단순한 욕설이 아닙니다. 이 언어는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상징하는 기표(記標)로 작동합니다. 여기서 기표란 어떤 의미를 담아내는 언어적 형식을 말하며, 소쉬르의 기호학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이청준은 이 단어들을 통해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얼마나 빠르게 단순화하거나 외면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지인이 사고 이후에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 할 때, 저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그냥 넘어갔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회피였습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서, 불편한 순간을 피하고 싶어서 거리를 뒀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의 상처는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채 남았고, 저는 오랫동안 그 사실을 직면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의 개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방어기제란 자아가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이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시키는 심리적 전략을 뜻합니다. 상처를 외면하는 행위가 반드시 비겁함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붕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 상태가 지나치게 오래 지속될 때입니다. 회피가 영구화되면 개인은 점점 고립되고, 회복의 기회 자체를 잃어버립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적절한 사회적 지지가 PTSD 증상의 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이를 뒤집어 말하면, 주변의 침묵과 무관심은 그 자체로 상처를 악화시키는 환경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병신과 머저리》는 완전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인물들 사이에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존재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단순한 문학적 희망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가깝습니다.

상처를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기 위한 조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억지로 이야기를 꺼내도록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
  • 판단 없이 들어주는 태도
  • 고통을 쉽게 단순화하거나 비교하지 않는 언어 습관
  • 시간이 걸려도 곁에 머무르는 관계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거창한 위로나 해결책보다,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청준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도 결국 그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가지 질문을 계속 붙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정말 그 사람을 위한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내 불편함을 피하기 위한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요. 상처를 억지로 끄집어내는 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병신과 머저리》는 그 사실을 6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가까운 사람을 떠올리며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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