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이 버거울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경제적으로 가장 여유가 없던 시기, 타인을 신경 쓸 여력 자체가 없다고 느꼈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나서 그 확신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진짜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 이 짧은 소설은 생각보다 훨씬 정직하게 그 질문을 건드립니다.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순간, 그때 뭔가가 바뀌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한동안 '이타주의(altruism)'라는 말이 다소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여기서 이타주의란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심리적 성향을 의미합니다. 형편이 어려울 때 그런 말은 여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들렸고,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개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가장 빠듯했던 시기, 우연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마주쳤습니다. 처음 든 생각은 솔직히 외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지금 이러저러하다'는 계산이 먼저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작은 도움을 건넸고, 그 이후에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이 남았습니다. 뭔가를 잃은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입니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저는 그 경험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구두 수선공 시몬이 낯선 이를 집에 들이는 장면이 바로 그 지점과 겹쳤습니다. 시몬 역시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선택이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갑니다. 작품은 이 장면을 통해 공감 능력(empathy)이 단순한 감정 반응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공감 능력이란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자신의 것처럼 인식하고 반응하는 심리적 능력으로, 심리학에서는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의 핵심 동인으로 분류됩니다. 친사회적 행동이란 타인이나 사회 전체에 이익을 주는 자발적 행동을 가리키며, 단순한 선행과는 결이 다릅니다. 실제로 하버드 의과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타인을 돕는 행동은 뇌의 보상 회로를 활성화시켜 도움을 준 사람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심리 효과를 일으킨다고 합니다(출처: Harvard Health Publishing). 저는 이 연구를 나중에 접하고, 제가 경험했던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톨스토이가 그 시대에 직관적으로 포착했던 것을, 현대 과학이 데이터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결국 인간은 연결 속에서 살아가도록 설계된 존재라는 것, 그 설계를 거스를 때 오히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을 저는 몸으로 먼저 알았고, 나중에 글로 확인했습니다.
인간이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공감 능력은 타인을 돕게 하는 심리적 출발점이 됩니다
- 친사회적 행동은 도움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주는 사람에게도 긍정적 효과를 남깁니다
- 연결과 관계는 물질적 조건이 열악할 때도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됩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린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사랑으로 산다"는 말은 처음 들으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말하는 사랑은 낭만적 의미의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에 가깝습니다. 애착 이론이란 인간이 특정 대상과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려는 본능적 경향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영국 정신과 의사 존 볼비(John Bowlby)가 체계화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과의 연결 없이는 심리적으로 온전히 기능하기 어렵습니다. 작품 속 시몬의 아내 마트료나가 처음에는 낯선 이를 거부하다가 결국 받아들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이 저는 특히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선한 마음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발동되는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갈등하고, 망설이고, 그럼에도 결국 선택하는 것. 저도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의 메시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사랑만으로 삶이 유지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부분은 조금 다르게 읽었습니다. 현실에서 물질적 조건, 즉 의식주와 경제적 안정은 삶을 지속시키는 기본 토대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면 오히려 작품의 힘이 약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은 삶을 유지하게 하지만, 삶의 방향을 결정짓지는 못합니다. 반면 사랑과 같은 가치는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이 작품은 현실을 단순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놓치는 본질을 의도적으로 부각한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실존주의 심리학(existential psychology)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습니다. 실존주의 심리학이란 인간이 의미와 목적을 찾는 과정에서 심리적 건강이 형성된다고 보는 관점으로,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의미 치료(logotherapy)가 대표적입니다. 프랭클은 극한의 환경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이 생존 가능성이 높았다는 관찰을 바탕으로, 의미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핵심 동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톨스토이가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과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신건강 보고서에서도 사회적 연결성(social connectedness)이 개인의 심리적 회복력(resilience)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출처: World Health Organization). 사회적 연결성이란 개인이 타인 및 공동체와 맺는 관계의 질과 깊이를 의미하며, 이는 단순히 아는 사람이 많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연구는 제가 경험으로 느꼈던 것을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결국 톨스토이의 질문은 시대를 가리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는 살아가면서 때로 계산하고, 때로 외면하고 싶어 집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저를 실제로 움직인 것은 계산이 아니라, 아주 작은 공감과 연민이었다는 것을. 그 선택이 쌓여서 지금의 삶의 방향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도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지금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이 어떤 방향이든, 그 질문 자체가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그 질문을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