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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리뷰 (자유의지, 인간성, 삶의 태도)

by 토끼러버 2026. 1. 21.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관련 사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계산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과 사유하며 안전을 추구하는 인간의 대비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작품입니다. 조르바라는 인물은 독자 내면에 잠들어 있던 또 다른 자아를 깨우며, 자유의지·인간성·삶의 태도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자유의지: 계산 없는 선택이 만드는 삶의 밀도

조르바는 삶을 선택의 연속으로 받아들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 내가 하고 싶은가'를 기준으로 행동합니다. 광산 사업에 뛰어들 때도, 사랑에 빠질 때도, 실패 앞에서도 그는 후회보다 행동을 택합니다. 그의 자유의지는 방종이 아니라 삶을 전적으로 자기 것으로 끌어안으려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타인의 시선, 사회적 기준, 미래의 불안을 이유로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 조르바의 모습은 현대인에게 매우 낯선 풍경입니다. 우리는 선택 앞에서 늘 손익을 계산하고, 실패 가능성을 먼저 고려하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하지만 조르바는 계산보다 체험을, 안전보다 충돌을 선택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무모해 보이지만, 동시에 삶을 실제로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그는 자유를 말로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증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됩니다. 조르바의 자유는 과연 책임 있는 자유인가, 아니면 매력적으로 포장된 이기성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의 선택은 종종 타인의 삶을 고려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며, 누군가는 상처받고 버려집니다. 조르바는 실패해도 춤추며 다시 일어서지만, 그의 선택이 타인에게 남긴 흔적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조르바의 삶은 매력적이면서도 따라 살기 어려운 모델로 다가옵니다. 또한 조르바식 삶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남습니다. 그는 순간의 열정과 에너지로 삶을 밀어붙이지만, 그 에너지가 사라진 뒤의 모습은 어떨까요?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고 관계가 복잡해질 때, 조르바의 방식은 오히려 더 큰 고립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자유의지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에서 드러나는 태도임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자유가 어디까지 타당한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남깁니다.

인간성: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진정성

조르바는 결코 완벽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는 충동적이고 거칠며, 실수도 많고 도덕적으로도 흠결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 매력은 바로 그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는 데 있습니다. 조르바는 자신의 욕망, 슬픔, 분노, 기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살아갑니다. 감정을 억제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이 모습은 이성적이고 절제된 화자와 강하게 대비됩니다. 화자는 생각이 많고 책 속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만, 조르바는 삶 속에서 직접 답을 찾습니다. 이 대비를 통해 카잔차키스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질문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성적이고 안정적인 태도를 성숙함이라고 말하지만, 『그리스인 조르바』는 오히려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모습 속에서 인간의 진짜 얼굴을 보여줍니다. 조르바는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상처받아도 닫히지 않으며, 끝까지 살아내는 쪽을 선택합니다. 그의 인간성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삶을 직접 부딪쳐 얻은 결과입니다. 작품을 읽으며 드는 부러움과 불편함은 동시에 찾아옵니다. 조르바는 우리가 쉽게 살지 못하는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는 생각보다 행동이 빠르고, 후회보다 체험을 먼저 택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인생을 시뮬레이션하다가 실제 삶을 놓치는데, 조르바는 그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유로운 태도는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가 되고 싶었지만 끝내 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르바가 이상화된 인간형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남습니다. 소설은 조르바의 강렬한 순간들만 보여주지만, 그 이면의 고독이나 후회, 책임의 무게는 상대적으로 덜 다룹니다. 조르바를 통해 카잔차키스는 인간이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며 만들어지는 존재임을 말하지만, 그 흔들림의 대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지 않습니다.

삶의 태도: 사유보다 체험이 만드는 존재의 의미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비는 '생각하는 인간'과 '사는 인간'의 차이입니다. 화자는 철학과 책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조르바는 일하고, 사랑하고, 춤추고, 실패하며 그 의미를 직접 만들어냅니다. 그는 인생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겪어내려 합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삶에 대한 근본적 태도의 차이입니다. 조르바에게 삶은 분석 대상이 아니라 참여 대상입니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가, 아니면 버티고 있는가?" "내 선택은 나의 것인가, 아니면 남이 만든 기준의 결과인가?" 같은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우리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떠올리고, 실패하지 않는 길을 택하며, 마음보다 계획을 앞세워 살아갑니다. 조르바는 그런 우리에게 다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조르바가 춤을 추는 장면은 단순한 명장면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상징입니다. 그는 실패 앞에서도 춤을 추며 인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삶이란 안전하게 관리하는 대상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고 몸으로 통과해야 하는 것임을 말합니다. 조르바의 태도는 완벽하지 않지만 살아 있습니다. 계산보다 감각을, 안전보다 충돌을 택하는 그의 모습은 분명 매혹적입니다. 하지만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습니다. "조르바처럼 살 수는 없어도, 나는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독자마다 다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조르바는 우리가 현실 속에서 포기해 온 자유, 충동, 열정, 현재성의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책임과 역할에 맞추며 살지만, 그 과정에서 조르바 같은 자아를 점점 밀어냅니다. 이 소설은 그 밀려난 자아를 다시 불러냅니다.『그리스인 조르바』를 다 읽고 나면, 조르바는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독자 자신의 내면에 남습니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답을 주지 않고 질문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꽤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너는 네 인생을 네 것으로 살고 있느냐"라고 묻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우리 안에 있던 '조르바 같은 나'가 아주 잠깐, 아주 작게, 다시 깨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위대한 교훈서라기보다 잊고 살던 감각을 깨우는 소설입니다. 정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삶을 다시 묻게 만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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